한국문화예술진흥협회
    협회소개 | 한국언어문화교육진흥원 | 정보마당 | 평생교육원 |지역본부 | KOARTWriting센터 | 자격관리 | 알림마당
문학자료실 미술자료실 독서자료실
논술자료실 교육일반
> 정보마당 > 논술지도자료실
 
작성일 : 11-05-24 14:11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7
 글쓴이 : 웹도우미
조회 : 1,463  

[논제 탐구 3 : 산업사회와 인간소외]

소외(疎外: Alienation)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의 문제 중 하나이다. 다양한 정의가 학자들에 의해서 내려지고 있고,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되고는 있지만 쉽사리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소외 현상이 발생하는 근원에 현대산업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소외란 자신이 무언가에 대하여 배제당하고 있다는 느낌, 혹은 사회적으로 그러한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마르크스가 19세기에 간파했듯이 산업의 발전은 인간을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하게 하고 있다. 농업 사회에서 농부는 자신의 노동 전반에 걸쳐서 거의 절대적인 힘을 행사한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언제 일할 것인지, 어떤 정도로 일하고 쉴 것인지, 생산된 농산물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가 모두 자신의 지배하에 있다. 그러나 현대 산업의 상징적 형태 중의 하나인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생각해보자. 그는 규칙적으로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일부를 담당하는 익명의 노동자일 뿐이다. 그는 자동차 설계에서 제작, 판매에 이르는 어느 한 과정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 조립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이나 주체성, 혹은 창의성을 드러내어서도 안 된다. 그는 단지 반복적으로 정해진 시간만큼만 정해진 부분에 나사를 조이거나, 용접을 하고, 혹은 색을 칠한다.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나면 아무도 그 노동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동차 어디에도 그가 일했다는 표시가 없다. 그가 길을 지나가도 사람들이 그를 유명한 자동차를 제작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의 경우 그는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자동차를 소유할 수조차도 없다. 여기에 소외의 본질이 있다. 다시 정의하자면 소외란 ‘삶의 주체성’을 상실하는 것이고, ‘권력’으로부터 배제당하는 것이다.

대중사회의 발전은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중사회에서는 모두가 주체로서 대우받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상류계층만의 전유물이던 다양한 문화적 취향을 TV라는 마법 상자를 통하여 보다 많은 대중이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값싸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개인은 도시화하는 대중 속에서 이름도 개성도 상실했고, 아직 새로운 질서에 대한 믿음도 얻지 못한 채 옛 가치들로부터도 멀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소외에 주목한 것이 뒤르켐의 아노미(anomie:그리스어로 '무법상태'라는 뜻의 anomia에서 유래)개념에 포함되어 있다. 아노미란 개인주의의 만연과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사회규범의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상황을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대중사회에서 주체성과 방향성을 상실한 현대인이 취하는 행동 양식을 ‘자동인형적 일치’로 정의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동일해지기를 추구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로써 자신과 외부와의 갈등을 잊고 동시에 고독과 무력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만화 주인공이나, 유명 연예인의 말투나 복장 등을 따라하는 것, 주변 친구들과 유사한 스타일의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자시에게 어울리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소외의 또 다른 양상은 소통의 부재이다. 이는 카프카의 ‘변신’에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아픔은 몸에서 오는 것보다는 가족들의 외면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단절이다.

소외문제의 해결은 근원적이기보다는 증상에 대한 대증적 처방이 대부분이다. 소외의 발생 원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에 있기 때문이고, 소외의 원인 중 일부는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오기 때문이다.

제시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회복할 수 있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먼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두려움을 해결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평생 교육의 활성화가 그 하나이다. 다음으로는 공식적 집단과 그 집단 내에서의 사무적 위계관계에서 오는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각종 ‘동호회’를 활성화하는 것이 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합리적 이성을 강조하는 서양의 가치에 대하여, 집단적 소통과 공감을 강조하는 동양적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논제 탐구 4 : 역사는 객관적인 것인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만 잘 알면 충분하므로 역사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객관성이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당장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에게 E. H.카의 널리 알려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역사가 오늘의 나의 삶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정말로 역사를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가?’라고. 그런 다음에야 역사가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참된 논거를 발견하고 제시할 수 있다.

사실 역사는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온 오랜 경험을 기록한 것으로 인간과 그 사회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유사 이래로 몇 단계의 혁명적 전환기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게는 도깨비나 귀신이나, 여우의 이야기가 그냥 동화나 전설이 아닌 삶의 일부였다. 그런 것들은 해가 지면 호롱불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가지고 인간의 삶의 영역과 간신히 경계를 지키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밝은 전등불 아래에서 새벽이 되도록 빛 아래에서 생활하는 내게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신이함이 지배하던 세계가 합리적인 판단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한 과거의 사고방식을 역사를 통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근원적으로는 현재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역사의 이런 유용성은 특히 역사학이 갖고 있는 구체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역사적 사실은 항상 언제, 어디서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된다. 역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의 구체적인 인간의 행위를 다루기 때문에 그 지식이 다른 학문의 경우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유용성을 갖는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지식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가 나아갈 미래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설계하는 밑거름이 된다.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실증적인 방법과 해석적인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실증주의적인 방법은 사료를 객관적으로 발견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역사를 객관적인 학문으로 정립하도록 기여한 ‘랑케’의 실증사학에서 시작한다. 랑케는 역사란 개인·민족·국가가 개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진화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함께 문화과정을 만들어나간다고 믿었다. 그는 역사란 '역사적 삶'의 복잡한 과정이며 이 역사적 삶은 위대한 국가와 그들 국가가 체험한 경험, 즉 역사적 사실로서 입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역사가는 본질을 추출하면서도 전체를 염두에 두고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랑케는 분석가라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역사서술가였다. 그는 모든 역사가들이 시간·장소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을 어떤 '당파'가 아닌 국가 자체와 동일시함으로써 최대한의 객관성을 얻으려 애썼다. 그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역사를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당시의 유럽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랑케의 실증사학은 일본에 의하여 한국 역사의 근대적 연구에 적용되면서 식민사관을 형성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증사학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 일본의 문제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일본인 사학자들은 올바른 객관적인 사관을 견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료만을 자료로 인정했으며,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는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감추고 심지어는 조작과 파괴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 연구에서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인식한 사료를 해석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 즉 사관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관은 역사학자가 위치한 그 시대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이나, 상황, 그리고 역사가 자신의 취향이나, 경험 및 인식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는 역사를 공부하는 일반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만고충신으로 평가되는 포은 정몽주의 경우도 조선 건국 초기에는 고려를 지지한 반대파의 한 인물로 제거해야할 걸림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주의적 인식을 극복하고 보편적 가치를 적용하여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만드는 것이 역사가의 본분이기도 하다. 다음 문제를 생각해보자.

가령 우리가 독립 투쟁사에서 영웅으로 추앙하는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사살한 행위는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역사를 근대화하고 일본을 세계의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한 위인을 저격한 테러로 평가될 수도 있다. 역사가라면, 이에 대하여 어떠한 객관적인 해석을 내려야 할 것인지 각자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게시물은 웹도우미님에 의해 2019-02-15 00:06:47 논술지도자료실에서 이동 됨]

 
 

Total 1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7 웹도우미 05-24 1452
15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20 웹도우미 05-24 2495
14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9 웹도우미 05-24 1399
13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8 웹도우미 05-24 1552
12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7 웹도우미 05-24 1464
11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6 웹도우미 05-24 1419
10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5 웹도우미 05-24 1422
9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14 웹도우미 05-24 1464
8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8 웹도우미 05-24 1422
7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6 웹도우미 05-24 1386
6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5 웹도우미 05-24 1763
5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4 웹도우미 05-24 1552
4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3 웹도우미 05-24 1401
3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2 웹도우미 05-24 1508
2 황영선생님의 안동신문 논술컬럼 01 웹도우미 05-24 1693
 1  2  
로고
개인정보보호정책 사이트 이용관련 건의 저작권정책 찾아오시는 길 이용안내 사이트 맵